JOSEPH HENRY DAVIS

조셉 헨리 데이비스

출생 : 1856년 8월22일 뉴질랜드 왕가리 

9남 3녀 중 차남

직업 : 선교사 (교장 및 선교사 및 목사 등)

출신 : 투락 칼리지 교사 (Toorak College)

호수 CMS(Church Missionary Society) 소속 인도 선교사

1889년 10월 2일, 호주의 한 선교사 조셉 헨리 데이비스가 한국 땅에 발을 처음 내디뎠다.  


호주의 빅토리아주 장로교회에서 그와 그의 누이 메리 데이비스에 의해 시작되었다. 데이비스는 한 때 인도 선교사였으나 건강이 좋지 못하여 22개월만에 귀국하게 되었고 코필드 문법학교를 설립하여 교장으로도 일했다. 무려 25세의 나이에. 그렇게 그는 다시 인도 선교사로 가려고 했으나 한국 선교의 시급함을 알리는 중국주재 영국성공회 선교 단체(CMS) 소속인 월푸 주교의 편지를 읽고 한국선교를 자원하게 되었다. 데이비스 선교사는 한문 성경과 전도지, 판매용 마가복음, 요리문답서 등을 들고 제물포에서 부산으로 선교 답사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한국에 온 지 6개월, 목적지인 부산을 코앞에 두고 천연두와 급성폐렴으로 33세 젊은 나이에 순교한다. 그 이후, 그의 순교에 영향을 받아 호주 선교사들이 점차 한국에 발을 내딛기 시작했고 그들은 경남 부산 일대에 의료선교, 교회개척, 교육사업, 고아원사업 등을 활발하게 펼쳐 나갔다. 편지 한 통으로 그는 자신의 삶을 내어드리는 선택을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한 나라가 변화하는 기적이 시작될 수 있게 불씨를 일으켜준 것이다. 한국에 파송된 첫 호주 선교사인 데이비드의 죽음으로 하여금 호주교회들은 한국 선교의 필요성에 대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청년연합회가 선교사를 파송하는 단체로 발전되었다는 사실. 또한 장로교 여전도회연합회의 조직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우리는 그의 삶을 보고 잊지말아야 할 부분이 있다. 하나님은 분명 하나님 나라 일을 하기 원하는 자들을 사용하신 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하는, 기억해야하는 아주 중요한 정신을 이번에도 또한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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