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ace Grant Underwood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한국어 이름 : 원두우

출생 : 1859년 7월 19일 영국 런던

사망 : 1916년 10월 12일, 미국 뉴저지 애틀랜틱 시티 (건강악화)


언더우드와 예수학당. 그리고 연세대학교. 나는 이러한 키워드에 대한 개념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더욱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기독교인이 세운 학교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한국 초기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내게 선교사들이 우리나라를 향해 어떠한 사랑으로 헌신하였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있다. 교육선교를 한 언더우드는 1886년 예수학당을 열었다. 그는 예수의 정신을 닮아 가는 일이기에 학교 이름을 예수학당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길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며 교육을 했다. 그리고 이것들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긴 것이 하나있다. 그건 바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것.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졌다. 아팠던 마음을 치료해주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그는 여러 고아들을 데리고 와서 보살피던 중 ‘번개비'라고 불리는 소문난 아이가있었는데, 바로 그 아이가 김규식 박사였던 것이다. 역사책에서 보던 인물을 선교사 책에서 보니 기분이 새로웠다.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만남을 가지게 하셨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놀라웠다. 이뿐만 아니라 예수학당 출신들이 민족운동을 하며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일에 힘을 썼다는 역사적 사실이 감동적이었다. 우리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이들임에도 불구하고 잘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것보다 그들의 정신을 잊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겠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민족의 사랑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함께해준 언더우드 선교사. 한국을 향한 그의 사랑을 어떤 단어로 표현할 수 있을까? 연희전문대학교와 세브란스 병원이 합쳐져서 생긴 지금에 연세대학교. 학비가 비싸고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가는 학교이라는 생각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일꾼이 세운 기독교 학교라고는 잘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언더우드는 이런 연세대학교를 세우는 일에 무지하게 간절했다. 그래서 거액의 기부금을 가지고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 태평양을 횡단하는 선상에서 조선 땅을 바라보면서 몇 번이고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는지 말을 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도대체 어떻게하면 그와 같이 자신의 모국이 아닌 한국을 그리고 사랑하며 그나라와 그의를 구하기 위해 희생을 할 수 있는 걸까? 그건 예수님의 사랑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그는 뒤따라 걸었던 것이다. 그저 스펙 쌓기에 좋은 학교도, 학비가 비싸기만한 학교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받아 세운 학교라는 역사를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할 수 있었다. 언더우드는 이수정의 편지에 감동하여 온 선교사 중 한 명이다. 그리고 그의 한국어 이름은 한두우이다. 그렇다면 언더우드란 어떤 사람인가?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다. 연희전문대학을 세우고, 예수학당을 운영했으며, 여러 선교활동에 힘을 썼던 그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져본 적은 없다. 이 시간을 통해 알게된 내용은 언더우드는 어떠한 삶을 살았으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한국선교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놀랍다. 하나님의 역사하신다는 것. ‘주님의 명령에 따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 음성을 듣고 한국으로 달려온 그의 열정과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이 되었다. (그 또한 이수정을 편지에 영향받아 아펜젤로와 함께 부활절날 한국에 오게 됨) 언더우드에 대해 궁금해졌고, 알아보고 싶다. 그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그의 삶 속에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함께하셨음을 알고, 주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순종하며 걸어갔었던 사람이 아닐까 싶다. 순종이라는 단어와 참 잘어울리는 인물이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힘써 일한 그의 열정과 정신을 본받고 싶다. 교육선교도 중요했지만, 본래 목적이었던 교회를 세우고, 전도를 하는 데에 있어서 소홀히 하지 않은 그에 대한 존경심을 나타내고 싶다. 그 시대에 한국초기 크리스천들은 교회를 세우고, 전도함에 집중하였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전하는 그런 거룩한 일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 상황상 천민과 함께 예배할 수 없었던 그 시대상황을 잘 나타내어주는 일들이 벌어져 군데군데 양반과 천민이 따로 다니는 교회들도 생겨나고, 원래 다니던 교회를 나와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일들이 일어났다. 안타까운 마음과 동시에 이렇게 하나둘씩 교회를 세우실 하나님의 뜻이 있었던걸까?하는 생각도 조심스럽게 들었다. 수업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순수한 선교에 대한 정신을 생각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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